본문으로 바로가기

대학안내

‘김말이 아줌마’, 모르면 간첩!!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시2011/04/11
  • 조회수22509
김말이 아줌마, 모르면 간첩!! 권택훈 입학홍보처, 조교

김밥아줌마 사진우리 학교에는 명물 아닌 명물이 있다. 바로 육세자氏(50)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우리 학교에서 아무도 모를 분이시지만 중부인 중 ‘김말이 아줌마’하면 모르는 사람 하나 없을 정도의 유명인이다. 학생들 중 필자에게 ‘학생종합지원센터가 어디죠?’하고 묻는 경우를 종종 격고 본다. 그러나 ‘김말이 아주머니가 어디계시죠?’하고 묻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김말이 아줌마’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말부터 우리 학교 눈이 오나 비가와도 매일 같이 행상을 나오는 김말이 아주머니를 만나 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소개를 부탁했지만 ‘아이고 뭐 내 소개를 햐~ 소개랄게 있나 내 이름도 몰라도 돼 그냥 때로는 이모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편하게 김말이 아줌마라고 불러 주는게 좋아..’라고 하시며 수줍어 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아주머니는 남편과 아들 2명이 있다고 조심스레 말문을 여시며 지나온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10여년 전 남편분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해 뇌를 심하게 다쳐 수술비와 병원비로 3년간 가진 재산을 모두 쏟아 붇고 장애 2급 판정을 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편과 어린 자식들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해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의 행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판암동에 살고 계시는 아주머니는 그때 당시 대전에 있는 다른 대학교에 행상을 나가 보았지만 이미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다른 상인들에게 내쫓김에 맞기까지 하는 심한 텃세부림을 많이 당하셨다 한다.


그리하여 찾게 된 곳이 바로 우리 중부대학교였다고 말하신다. 여기 오셔서 역시 첨부터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 때 당시 매일 눈물로 살며 인생의 벼랑 끝에 서있는 듯 한 어려운 생활을 했었지만 그것을 견디고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과 교수님, 그리고 직원들 모두 힘과 용기 덕분에 강한 생활력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신다. 아주머니의 사정을 아는 학생들과 우리 모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자고 눈물로 맹세 했던 일, 군대에서 휴가 나오자마자 아줌마표 김말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달려온 군인 이야기, 아줌마 떡 먹고 졸업해 시집 잘 간다며 보내온 청첩장 그리고 아주머니가 다리를 다쳐서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할 때 외국인 강사의 안부 전화 등 그간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해 주셨다. 이런 서로의 인연과 정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내가 살 수 있었을까’라고 말씀 하신다. 변화하는 중부에 산 증인 아주머니께 우리 중부대학교는 어떤 학교인지 여쭤봤다.


아주머니는 학교도 점점 커지고 너무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주말이나 휴일 그리고 방학 때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중부대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주머니 떡 먹고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 한 일원이 되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하고 아주머니를 잊지 못하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노력과 열정의 힘이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지며 ‘자식 같은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드신다고 말씀하신다.
매일 새벽 떡과 도너츠를 맞추고 김말이를 직접 만들어 오신다는 아주머니의 김말이는 항상 오전 중에 동이 난다. 그만큼 맛이 있다. 아주머니께서도 떡하고 도너츠는 내가 하루 동안 직접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여서 맞추어 오지만 김말이만큼은 손수 정성과 학생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드신다고 말하신다. 그래서 더 맛이 있는 것 같다. 장난스레 며느리에게도 말해주지 못하는 맛의 비결이 있냐고 물어보는 필자에게 간장에 대한 예전 이야기를 꺼내신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어 제대로 된 간장도 아닌 일반 간장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직접 간장을 만드는 곳에서 사와 갖은 양념을 하신다고 미소를 띠우시고 ‘학생들이 좋아햐~ 잘먹어~’라고 말하신다. 또 아주머니는 장사가 끝난 후에 학교 주변을 청소하신다. 매일 같이 점심 끼니도 안 챙기시고 청소를 하시는 것이 힘들진 않은지 여쭤보았다. 단호히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좀더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서 낡은 청소 장갑 두 쌍을 꺼내 보여주셨다. 이런 것이 아주머니가 지금껏 중부대학교에 받으셨다는 여러 사람들에 情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지금도 등나무 밑에서는 ‘돈을 더 드리겠다, 아니다 괜찮다 음식을 그냥 먹어라’라는 기분 좋은 실랑이를 흔히 볼 수 있다. 항상 학생들에게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더해주지 못 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하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자신은 못 배웠고 무식하지만 항상 착한 마음으로 인연을 소중히 하고 매사에 창피해하지 않는 것이 큰 길을 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치셨다.
이번 겨울호 소식지를 위해 김말이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몇몇의 학생들이 아주머니를 위해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자도 김말이 아주머니의 김말이와 떡을 먹으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학번이 바뀌고 시간은 지나도 학생들이 아주머니를 좋아하고 또 아주머니가 파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며 아주머니께서 팔고 또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음식을 넘은 情이며 우리들 사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